우울증 때문에 병원에 다닌지 벌써 5년이 넘었다.
의지가 박약하여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자학하기
그러니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구체적이고도 확실한 자기 선언
이대로 돌연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이 삼박자가 어느 괴로운날 잠깐 떠오른 감상이 아니라 삶 자체였다. 이게 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그저 나약한 인간이 핑계댈 곳이 없어서 그럴듯하게 우울증으로 포장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다시 자학했다.
어찌저찌 취업을 하고나니 더 문제였다. 평소에 없는 에너지를 대출해서 회사에 끌어쓰고나면 늘 마이너스 상태인데다, 업무중에 특별히 더 긴장을 유발하는 사건이 생기면 죄책감 증폭기가 되었다. 스스로가 너무 버거웠다.
누가 나 좀 차로 쳤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암이었으면 좋겠다, 그럼 나도 죽을 수 있고 보험금으로 우리 부모님한테 효도나 할 수 있을텐데(자살하면 보험금 못받으니까). 더한 날은 구체적으로 자살을 계획해보기도 했다. 숨쉬듯 생각했다.
죽고 싶은데, 죽고 싶지 않아서 병원에 갔던 것 같다. 물론 병원에 다닌다는 것 자체로 인생이 바뀌진 않았지만, 다니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더 감당할 수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완치"될 수 없다는 좌절감이 가끔 찾아오기도 한다. 매일 밤 약 먹는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최근 일을 쉬며 마음의 여유를 찾다보니 어쩔땐 내가 우울증이 있었나 싶을 때도 있으리만큼 좋은 몇 달을 보냈다. 그래서 약을 끊을 수 있는 날이 오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오지요" 라고 대답하고서 지난달과 같은 약을 처방해주었다. 뒤돌아 약간 야속하기도 했는데 당연히 내가 그럴 상태가 아니었겠지. 이쯤되니 도저히 이 병이 나를 놓아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처음 병원에 갔을때 선생님이 그러셨다.
우울증약은 안좋은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게 아니에요.
지금은 사소한 일에도 -100 까지 가라앉고 0으로 돌아오기까지 너무 많은 힘이 들지만
약을 먹으면 -80, -50, -30 까지만 가라앉고 0으로 돌아오는 힘도 이전보다 덜들 수 있도록 도움이 될 거예요.
그니까 약을 먹어도 우울하다는 결론. 혈압약 먹는다고 고혈압이 완치되지 않고, 당뇨약을 먹는다고 당뇨병이 치료되지 않듯, 내 병도 그렇겠지. 그저 조절하고 살아가는 거겠지.
딱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시작한 글은 아니었다보니 중구난방이로구나. 어쨌거나 오늘은 한 달만에 병원에 다녀온 날이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고 있다.
보통 선생님의 질문은 똑같다.
"요즘은 좀 어떠세요?"
"잠은 잘 자세요?"
"기분은 좀 괜찮으세요?"
네, 네, 네.
지난달이랑 똑같은 약봉지를 들고 집으로 온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얼마든지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병원에 가면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진다. 근데 오늘은 똑같은 질문에 재채기하듯 말해버렸다.
"죽고싶어요"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네요"
"우리가 삶의 목표가 없어서 그래요. 사람들이 말하는 목표는 사실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죠. 좋은 대학에 가는 것, 운동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는 것, 그건 모두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에요. 궁극적인 목표가 뭔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목표가 있다면 중간 중간에 우리가 가끔 넘어져도 그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돌아갈 수 있잖아요."
사실 진료실에서 그 말을 들을땐, 이 선생님이 내 말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구만.. 그냥 대충 끄덕끄덕 하고 나왔는데. 지금 적고 보니까 되게 좋은 말을 해주셨네.
사람은 왜 살까? 인생의 목표가, 삶의 의미가 뭘까? 현인들이 인생의 의미는 없다고 했다던데. 그저 살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만약에 목표를 찾고 의미를 찾으면 좀 덜 죽고 싶어질까요?(질문 아님)
병원 벽에 걸려있는 액자. 보고 있으면 묘하게 힘이 난다. 슬기롭게 이겨냅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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