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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일기

필사를 하며 생각한 것들

by 밥포켓 2021.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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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할 일도 없고 생각할 일도 없다보니 점점 멍청해지는 것 같다. 책도 몇 권 읽었는데 축구선수 덕질을 시작하고는 휴대폰에만 매달려있다. 가끔 컴퓨터를 켜서 타이핑 필사를 하는 웹페이지에 들어가 무지성으로 몇 자 적곤하는 것이 내가하는 유일한 문자활동이다.

 

어제 밤부터 오늘까지 기분이 유달리 무無이다. 이걸 자각하는 건 흔한일이 아니다. 차라리 보통은 우울하기 때문이다. 근데 지금은 텅 빈 것 같다. 어제 밤에도 눈을 감고 그대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몸무게를 재고, 엄마가 가져다준 김밥을 먹고 차를 마실때 까지만해도 또 그저그런 일상이었다. 근데 평온한 침착맨의 야외방송을 틀어놓고 타이핑 필사를 하다보니 또 갑자기 무無의 기분이 갑자기 찾아든 것이다.

 

아마도 버튼은 '행복'이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행복해지는 길은' 따위의 반쪽 문장을 쓰는데 아주 역설적이게도 불행이 찾아왔다. 나는 행복이 뭔지 모르는 사람만 같다. 도대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내가 뭘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과연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일까? 심지어는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행복을 말하는 입들이 우습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은 행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하고, 하다못해 행복해지는 방법을 생각이라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떠올려봐도 그게 뭔지 모르겠다. 맛있는 걸 먹고, 여행을 하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잠을 자고, 산책을 해도, 도무지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냥 해보는 것 뿐이다.

 

어제 손흥민의 엘르 화보 컷을 보았다. 보기만 해도 웃음을 짓게 하는 사람이다. 그게 무슨 기분인지 설명할 수 없다. 그냥 그가 웃거나, 그저 멋있는 표정을 짓거나, 서있기만 해도, 그걸 바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눈물나게 부럽다. 심지어 인터뷰로 '멋진 인물'에 대해 어떤 말을 했냐면 "잘하고 못하는 건 선택할 수 있는게 아니지만,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즐겁게 임하는 건 누구든지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정말이지, 어느 경지에 오른 사람같다. 실제 그가 훈련하는 영상을 보면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 알 수 있잖는가. 그래서 나도 다시 출근을 하고 일을 하게 될테니, 감사하게 생각하고, 즐겁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훌륭한 동기부여가 됐다.

 

근데 지금 생각은 또 무無이다. 아마 어제 약을 먹지 않고 잤기 때문인듯 하다. 근데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으니 뻥 뚫려버린 내 인생은 구제불능, 구렁텅이라는 몹쓸 생각이 또 든다. 우울증의 가장 대표적인 심상이 바로 '텅빈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도 썼지만, 오히려 우울함, 무기력, 자살사고 등의 부정적 심상은 늘 달고 살며 자각하기 쉬웠지만 이렇게 텅빈 기분은 또 처음이라, 허공에다 손을 휘적거리는 기분으로 일기를 써보았다. 

 

이 블로그의 방향을,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브랑수아즈 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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