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할 2푼 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한 게임의 야구에는 인생이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모두 프로의 야구를 원한다. 아마추어는 프로가 되기 위한, 언제나 과도기일 뿐이다.
이 세계는 그래서 프랜차이즈이다. 학교를 가고 외우고 외워서 시험을 치고 다른 학교를, 기왕이면 좋은 학교를 가서 외우고 다시 외워서 시험을 쳐 더 좋은 학교, 이왕이면 일류 학교를 가서 여전히 외워서 시험을 치고, 졸업하면 반복해서 외우고 입사 시험을 치는, 그렇게 일을 하고 일도 하고 일만 하다 죽는 삶이라는 프랜차이즈다. 이 모든 과정들은 참 잔혹하지만 '프로-유사어로 열정, 노력, 청춘의 땀방울 등이 있다-'라는 한 마디로 정당화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땅은 프로들의 세계니까. 아마추어들은 언제나 프로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반도에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세계가 탄생한다. 치기 싫은 공은 치지 않고 잡기 싫은 공은 잡지 않는 야구단이다. 이 가열찬 프로들의 세계 속에서 10승 30패, 5승 35패의 전적을 가진 이 아마추어 야구단은 역설적으로, 그래서 인생이다. 프로의 세계도, 중산층의 세계도 아니었던 삼미 슈퍼스타즈는 20여년이 훌쩍 지난 어느새 프로의 삶을 살고 있던 '나'를 부메랑처럼 휘감았다. 그렇게 다시 '나'는 지구를 재구성할 이런저런 종들을 방주에 담아가며 세계를 만든다. 프로의 세계에 있을 땐 하나의 점이이었던 '나'를. 이혼과 실직, 휴식은 그 점을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 내었다.
그래서 이 책은 성장소설이다. 누구나 성공담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세상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실패담이다. 이 가열된 프로의 땅에서 우리는 가슴속에 하나의 삼미슈퍼스타즈라는 별을 가지고 있다. 이 삼미 슈퍼스타즈는, 어쩌다 하나의 희망이라는 또 다른 부메랑이 되어 이 세상에 수많은 세계로 가 휘감는다. 그래서다. 우리는 실패가, 그리고 삼미 슈퍼스타즈가 필요하다.
42p/예컨대 모든 슈퍼맨들의 이름이란 그런 것이다. 슈퍼맨의 경우엔 "어, 클라크? 무슨 시계의 일종인가?" 하기 쉽지만 사실은 사람의 이름이며, 007의 경우엔 "어, 본드? 접착제를 말하는 건가" 하기 쉽지만 역시 사람의 이름이며, 배트맨의 경우에도 "어, 브루스? 그건 춤이잖아?" 하기 쉽지만 역시 사람의 이름인 것이다. 그들은 모두 그런 이름을 지닌 채-평상시엔 지극히 평범한 정장 차림으로 신문사를 오가고, 미인을 만나고, 시가를 피우고, 스프링 캠프를 향해 출발하는 버스에 오르는 것이다.
145-146p/ 그러나 '1학기'가 빨리 지나갔을 뿐, 길고 무료한 하루하루의 시간은 여전히 늪처럼 고여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영화를 보고, 낮잠을 자고, 바람을 쐬고, 친구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책을 읽고, 밤새 토론을 하고, 해장국을 먹어도 하릴없는 시간이 남아돌았다. 지역 예선에서 탈락한 투포환 선수처럼, 나는 급기야 허탈하고 불안해졌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왜?" "글쎄, 그냥." "뭐 어때? 어차피 졸업장만 따면 되잖아."
199p/ 인생은 결국, 결코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이ㅡ거듭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가 몇 가지의 간단한 항목으로 요약되고 정리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도 버티고 있는, 그래서 아무 일 없이 흘러가고 있는 우리의 삶은ㅡ실은 그래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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