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비긴즈]가 배트맨의 탄생을, [다크 나이트]가 배트맨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는 돌아온 영웅 배트맨에 관한 이야기이다. 놀란의 배트맨 3부작 중 가장 센 악당 베인이 나타나 고담시를 무너뜨리려 하고 그것을 저지하기 위한 배트맨이 등장했다. 베인은 고담시를 장악하기 위해 '혁명'을 시도한다. 1%에게만 돈이 돈을 벌어다 주는 증권가를 테러하고 돈 많은 사람들과 권력자들을 차례로 민중재판하며 고담시의 장악권을 시민들에게 넘긴다. 하지만 베인이 길거리를 폭파하기 전에 하는 말 "절망은 희망이 있을 때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을 통해 보면, 핵무기로 고담시 전체를 파괴하기 전 시민들에게 가하는 일종의 희망고문인 셈이다.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끊임없이 배트맨을 괴롭히며 그를 성찰하게 만들었다면 베인은 이런식으로 8년동안 세상 밖에 숨어있던 배트맨을 불러일으키는(Rise) 악당이다. 하비 덴트의 말처럼 [다크 나이트]에서는 악당으로 살아남았었다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사라져버림으로써 영웅으로 '남게 된다'.
로빈 vs 웨인
배트맨이 사라진 고담시에 새로운 영웅이 등장할까. [다크 나이트]의 백기사 하비 덴트와 유사한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블레이크가 등장한다. 하비가 결국 백기사로서 제 정체성을 잃고 투페이스로 미쳐 죽어버리는 것과 달리 블레이크는 스스로 경찰뱃지를 강가에 버리고 또 다른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로 인해 앞으로 배트맨이 헐리우드의 부름을 받지 않을 것도 아니고, 그 속편들이 로빈의 이야기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내 결론은 그렇다. 놀란은 007이나 만들어 줘라.
내가 꼽은 최고의 명장면은 마지막에 팝!하고 나타나는 엔딩이다. 음악과 함께 이 글자가 나올 때 생산되는 여운은 불이 켜지더라도 바로 자리를 뜰 수 없게 하고 극장을 나온 한 동안에도 계속 흥분이 가라 앉질 않게 만든다. 그래서 여기는 엔딩이 아니라 언제나 나에게 한 '장면'으로 남는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다크 나이트>는 사회정의와 공익의 방법론에 관한 이야기였다. 모든 사실에는 동전의 양면보다 더 많은 수의 결이 있다.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공평한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 한 남자는 스스로 정의로웠다. 그의 정의는 공공의 선을 지향했다. 그는 밤마다 검은 옷을 입고 밖에 나가 자신에게 허락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범죄자를 처단하며 공익을 실현해왔다. 막무가내로 법을 초월해 행동한 건 아니었다. 그는 기존의 사회안전망 안에 일종의 편법처럼 끼어들어 시스템의 일부로 기능했다. 그가 범죄자를 잡으면, 짐 고든이 체포했고, 하비 덴트가 기소했다. 한동안 이 시스템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일시적인 공조는 지속될 수 없었다. 그의 정의가 궁극적으로 실현되려면, 애초에 그 자신이 ‘영웅’으로 존재해선 안되는 것이었다.
하비 덴트의 말은 그리스 비극의 신탁과도 같았다. “영웅으로 죽든가 악당으로 살아남든가.” 예언은 이루어졌다. 남자는 영웅이길 포기하고 자경단으로 전락했다. 공공의 선을 실현하기 위하여, 죽은 하비 덴트는 영웅이 되어 희망의 상징이 되고 살아남은 남자는 악행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유폐되어야만 했다. 그는 세상의 손가락질을 당하고 개에게 쫓기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신화다.
이를테면 <다크 나이트>는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과 같은 이야기였다. 이 어두운 이야기는 선한 세력의 추락을 다루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시리즈 문법 안에서 보나마나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문제는 시리즈를 닫는 가장 근사한 형태의 모범 답안이되, 독립된 개별 작품으로서의 개성과 만듦새, 이슈의 두께는 상대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데에서 발생한다. 베인을 보라. 이 영화 속에서 베인은 조커에 뒤지지 않는 멋진 캐릭터였다. 코믹스의 베인보다 열배는 매력적이다. 배트맨을 없애고 갱단을 굴복시키고 결국 자신이 고담을 지배하려고 했던 코믹스의 베인에 비해, 영화 속 베인에게는 거대한 계획과 신념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정확히 절반으로 나누었을 때 중반부까지의 베인과 후반부의 베인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 보인다. 베인을 둘러싼 갈등의 밀도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 혁명의 과정을 모사해가며(앙시앵 레짐-하비 덴트 특별법, 바스티유 감옥 습격-블랙게이트 수용소 습격, 파리시청-고담시청) 거창하게 실행된 도시 점령은 별다른 논리도 당위도, 신념의 뼈대도 없이 오직 앙상한 거짓말로서만 기능한다. 월가 점령의 잔상 위에서 신념에의 대결로 읽혀지리라 예상되었던 이야기는 낡고 투박한 육탄전으로 대체되었고 혁명가로서의 베인 또한 연애감정에 휘둘린 ‘남성’으로 종말을 맞는다.
이는 사실상 라스 알굴 때문이다. <배트맨 비긴스>의 라스 알굴과 ‘어둠의 사도들’은, 삼류 음모론에 빠진 중학교 2학년 일기장 수준의 대의를 가진 악당들이었다. 시리즈의 마무리를 위해 그들이 돌아와야만 했고, 이야기의 고민도 그와 함께 하향 평준화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시리즈를 닫는 완결편으로서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여전히 매혹적이다. 이 시리즈는 늘 공동체를 향한 염려로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 공동체 구성원 전반이 공유하는 신념을 매우 강조한다. 시리즈 매회의 갈등은 그 신념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발생했고, 그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함으로써 해소되었다. 우리는 웨인 부부의 죽음, 하비 덴트의 우상화된 죽음과 같은 것들이 신념의 재료가 되어 지탱되어 온 이 공동체를 지난 몇 년 동안 지켜봐왔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하비 덴트라는 이름의 신탁의 예언은 망령처럼 꿈틀대며 배트맨 신화의 마지막까지 끌어안는다. “영웅으로 죽던가 악당으로 살아남던가.” 브루스 웨인은 삶을 잃고 다크 나이트는 삶을 얻었다. 공동체는 건재할 것이다. 이 얼마나 완전한 결말인가. 허지웅 (주간경향 '허지웅의 터치스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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