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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된 정의>
박상규, 박준영 저 | 후마니타스 | 2016년 12월 17일
예전에 박준영 변호사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의 말투는 변호사답게 매우 설득력이 있었고 호소력이 있었다. 사회적 약자, 억울한 사람들에 대해서 아마도 그는 몇백번이고 같은 말을 했을 테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있었다. 자신은 옳은 일을 하고 있고, 그런 일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그런 자신감과 힘.
그러나 그에게도 그게 일이고, 그래서 아주 지긋지긋하게도 치였을텐데 진심을 잃지 않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나도 그런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을 잃어버린걸까? 아니면 원래 나는 어느정도 사회 부조리는 지나칠 수 있었던 사람이었던걸까? 그의 강연을 들으며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그에게 약자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무어냐고 물었다. 그는 잠깐 고민하더니 “이상하게 들릴수도 있겠지만, 슬픈 이야기를 많이 접해야 해요”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인간의 마음에는 모두 정의로움, 측은지심이 있기 때문에, 자꾸 건들여줘야 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그의 대답을 떠올린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다.
헌법이 정한 바대로, 이 사건 피고인들이 존엄한 인간으로 대우를 받았나요? 행복추구권은 보장받았나요? 이들이 법 앞에 평등했나요? 오히려 역차별을 받지는 않았나요? 국가는 장애가 있거나 미성년자였던 이들, 그리고 이들의 가정을 어떻게 보호했나요?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 검사, 그리고 재판을 했던 판사는 이들에게 봉사자였나요? 이들에 대한 책임을 진 사실이 있나요?_박준영 변호사의 삼례 나라슈퍼 강도 치사 사건의 최종 변론 중에서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 전문 변호사’로 잘 알려져 있다. (2007년 발생한 ‘수원 노숙 소녀 상해 치사 사건’을 비롯해) 그가 수임한 재심 사건들은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삼례 사건과 익산 사건에서 누명을 쓴 이들 모두 재심을 거쳐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어떤 재심 사건에도 ‘좋은 결과’란 존재하지 않는다.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하나같이 길었다. 사건 발생 당시 18~20세였던 ‘삼례 3인조’는 짧게는 3년 6개월, 길게는 5년 6개월까지 복역했고 17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익산 사건 발생 당시 15세였던 최성필 씨는 1심에서 미성년자에게 내릴 수 있는 법정 최고형(15년)을 받았고, 2심에서 허위 자백하고서야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9년 넘게 복역했고 누명을 벗은 것은 16년이 지난 뒤였다. 김신혜 씨는 복역 중인 무기수로는 최초의 재심 결정 사례가 되었지만, 검찰이 1심 결정에 항고해 현재 광주고등법원이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고 있기에 여전히 무죄 여부를 다투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시간은 어떻게 해서도 보상될 수 없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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